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예 훈장 (문단 편집) == 명예 훈장과 수훈십자장 == 몇몇 사람들은 [[수훈십자장]]을 [[미군]] 최고 훈장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 훈장으로서의 격은 '명예 훈장 > 수훈십자장 > 은성무공훈장 > 동성무공훈장' 순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착각이 일어날 만도 한 게, 수여자의 거의 70퍼센트 이상이 살아서 훈장을 받지 못했고[* 실제로 살아서 명예 훈장을 수여받는 사람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각 주 내에서는 물론이요, 미국 내에서도 '''살아있는 전설''' 대우를 받을 정도. 실제로 방송에서 만약 명예 훈장 수여자의 모습이 나오면, 그의 이름이 방송 자막에 따로 표시된다.], 전사하고 나서 한참 후에 영웅적인 희생과 전공이 재발견되어 추서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보통 살아서 바로 받는 최고의 훈장이 수훈십자훈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거기다 명예 훈장은 그 디자인이 수훈십자장과 다르게 약장은 아예 다 똑같다. 두 훈장의 특성이 다른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명예 훈장의 경우 뛰어난 무공도 당연히 훈장 수여 심사 항목이지만 그것보다 미합중국 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스스로를 희생한 것에 더 수여 심사의 기준을 맞췄다.[* 예를 들자면 부상을 입었어도 후송을 거부하고 계속 용감히 싸웠다거나, 후퇴하는 아군의 후미를 지키기 위해 혼자 남아 적군과 맞선 것 같이 말 그대로 미군으로서의 '명예'를 지킨 행위를 높게 친다. 비교적 덜 알려진 수여자를 중심으로 보면, 2차 세계대전 미드웨이 전투 당시 포격으로 중상을 입었음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통신시설을 복구하도록 하고 자신은 전사한 조지 캐넌 중위, 타라와 전투 당시 혼자서 여러 일본군 총좌를 파괴하고 그 와중에 총상을 입었음에도 동료 병사까지 구출한뒤 다시 공격을 이어나가다 전사한 윌리엄 보들론 해병 중사, 사이판 전투 당시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직접 기관총을 잡고 일본군에 맞서 부하들을 지키다 결국 전사한 윌리엄 오브라이언 육군 대령, B-29 폭격기 안에서 백린탄의 오발로 기체가 추락할 위기에 처하자 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태워(!) 동료 전우들과 기체를 구한 헨리 어윈 육군 항공대 상사(수십 차례의 수술 끝에 생존) 등이 그 예이다.] 한편 수훈십자훈장의 경우는 순수 무공이라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춰서 수여된다. 수훈십자장도 서열 2위의 무공훈장인 만큼, 이거만 받아도 군생활 및 전역 후 생활과 여러 혜택이 많다. 명예는 말할 것도 없다. 2차대전 당시도 명예 훈장 수여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태평양 전쟁]]사를 보면 엄청난 공적을 올려 당연히 명예 훈장을 받았겠거니 싶었는데 받지 못한 경우가 상당하다. 이들 중에는 명예 훈장 수여자를 압도하는 전공을 세우고도, 심지어 '''미국의 적과 전투 중에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 눈에 띄는 용맹을 보여준''' 군인인데도 수훈십자장밖에 못 받은 군인들도 있다! * [[미드웨이 해전]]에서 월드론 소령은 일본 함대를 상대로 전투기의 호위없이 거의 자살공격에 가까운 뇌격에 돌입해 전사했으나 그 결과 일본 호위기들을 저공에 잡아둘 수 있었고 미국의 급강하 폭격대가 아무런 방해없이 일본 함대를 폭격해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월드론 소령은 명예 훈장을 받지 못했고 해군십자장(Navy Cross)을 받았다. 다만 한 미국의 기자는 윌드론이 명예 훈장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http://dailycaller.com/2017/05/28/john-waldron-forgotten-hero-and-american-badass/|#]] * [[미드웨이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의 제6급강하폭격기대대 대대장 C. 웨이드 맥클러스키 소령은 그 유명한 운명의 5분으로 [[태평양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켰는데도 명예 훈장을 못 받았으며 그 다음 훈장인 해군십자훈장을 받는데 그쳤다. 맥클러스키의 뒤를 따르던 리처드 베스트 대위는 자기 편대를 이끌고 돌입, 일본군 나구모 함대의 기함인 아카기를 폭탄 한 방으로 격침시키고 같은 날 히류에게도 폭탄을 명중시켜 격침에 일조했다. 그런데도 베스트 대위는 명예 훈장을 못 받았고 해군십자훈장을 받았다. *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격추한 토마스 랜피어 대위도 명예 훈장을 못 받았다. 사실 랜피어 대위는 작전을 마치고 귀환하면서 무전으로 "내가 야마모토를 격추시켰다"고 떠들어대서 기밀을 누설한 적이 있어 이를 전해들은 홀시 제독이 훈장 주지 말라고 했다가 다른 사람들의 만류로 육군의 수훈십자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 해군십자장과 동격)이라도 겨우 받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훗날의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실제 야마모토를 격추한 것은 렉스 바버(Rex T. Barber) 중위로 확인되었으며, 미 공군은 랜피어와 바버 두명의 공동 격추로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거의 바버의 단독 격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바버 중위도 명예 훈장을 못 받았다. * 더 퍼시픽으로 유명한 미 해병대의 전설 루이스 풀러 [[장군]]도 못 받았다. 대신 이 쪽은 해군십자장을 5개나 받아서, [[잠수함]] [[에이스]]인 [[https://en.wikipedia.org/wiki/Roy_M._Davenport|로이 밀턴 데븐포트]] [[제독]]과 함께 역대 해군십자장 수훈 공동 1위이다. *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 1사단을 이끌며 처절한 [[장진호 전투]]를 치른 [[올리버 스미스]] 사단장(소장)도 명예 훈장을 못받았다. 당시 수많은 미 해병대 장병들은 올리버 스미스가 당연히 명예 훈장을 받았어야 했다며 분노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틴 러스, 《브레이크 아웃》(나남출판) 참조.] * [[레이테 만 해전]]에서 플레처급 구축함 USS 히어만의 함장이었던 '''아모스 T. 해서웨이'''는 [[어니스트 에반스]]의 구축함 USS 존스턴의 뒤를 따라 구축함 호엘, 호위구축함 사무엘 B. 로버츠와 함께 돌격했으며, 함께 싸운 존스턴, 호엘, 사무엘 B. 로버츠가 격침된 후에도 끝까지 최전선에서 구리다 함대에 맞섰다. 이때 태피 3의 호위항공모함과 그를 호위하는 구축함들은 히어만과 함께 싸울 수가 없었는데, 이는 히어만이 어디까지나 호위항공모함이 달아날 시간을 버는 총알받이였기 때문이다. 호위항공모함이 히어만과 함께 싸운다는 것은 탈출에 실패했다는 의미이며, 실제로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는 탈출에 실패한 후 최후까지 싸우다가 침몰했다. 히어만이 죽을 때까지 싸운 이유는 호위항모의 안전을 위해서인만큼, 다른 호위항모들은 히어만을 내버려두고 도망쳐야 했다. 그것이 그들의 의무였기 때문이고, 이대로라면 히어만도 용감한 동료 구축함 3척과 함께 가라앉을 운명이었다. 그 뒤는 당연히 태피 3의 전멸과 레이테 만의 미군 상륙부대가 박살나는 것이며,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히어만은 일본의 자랑이라는 16인치 포 탑재 전함 나가토, 세계 최대이자 최강이라는 야마토급 전함 1번함 야마토, 실전경험이 풍부한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를 상대로 혼자 싸운 끝에, 야마토와 나가토를 어뢰로 쫓아버리는 기적을 일으켰다. 하루나가 히어만의 어뢰를 피했지만 이후 전과를 올리지 못한 것까지 감안하면, '''히어만은 일본 전함 3척을 혼자 물리친 셈이다.''' 일본에서는 야마토가 어뢰를 피한 후 다시금 싸웠다고 주장했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구축함 히어만은 전함 야마토와 2시간이나 싸우고도 승리한 셈이다. 심지어 일본의 중순양함 토네와 치쿠마까지 덤벼들었는데도 히어만은 끝까지 버텼고, 일본 함대가 구리다 턴을 시전하며 퇴각하면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구축함이 대낮에 전함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히어만 함장 아모스 T.해서웨이와 히어만의 장병들은 '''미국의 적과 전투 중에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 눈에 띄는 용맹을 보여준 군인'''이라는 명예 훈장의 수훈요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셈이다. 그 어떤 사령관도 구축함 함장에게 "대낮에 자네 혼자서 전함을 막아내라"고 명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해서웨이 함장은 명예 훈장을 받지 못했다. 히어만이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누구보다 먼저 죽음을 각오하고 앞장서서 돌격하여 히어만을 포함한 구축함들을 이끈 USS 존스턴이라서 그랬다는 주장도 있으나, 어차피 존스턴이 돌격했든 안 했든 태피 3은 전멸하고 레이테 만은 쑥대밭이 될 운명이었다. 일본 전함들을 구축함과 호위항모가 포격전으로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스턴을 포함한 태피 3의 어떤 군함도 일본 전함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어니스트 에반스가 무능해서 일본 전함의 포격에 존스턴이 대파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이라서 그랬다는 말이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야마토와 나가토를 막아낸 것은 전적으로 히어만과 그 함장 아모스 T. 해서웨이, 그리고 히어만의 용감한 군인들의 공로였고, 그것이 사마르 해전, 나아가서는 레이테 만 해전 전체를 미군의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기에 해서웨이 함장이 명예 훈장을 받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어니스트 에반스가 명예 훈장을 받을 만한 전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해서웨이 함장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명예 훈장을 받을 만한 전공을 세운 사람이 여러 명이라면 여러 개를 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해서웨이는 어니스트 존스턴과 달리 명예 훈장 바로 다음 등급인 해군십자장을 '''살아서''' 받았으며, 미국 정부와 필리핀 정부는 히어만에게 대통령 부대 표창을 수여했다. 첨언하자면 태피 3의 사령관인 스프레이그도 명예 훈장을 못 받고 해군십자장만 받았다. 위의 경우를 종합해 보면, 무공이 대단하더라도 그것이 본래의 임무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였거나[* 미드웨이 해전 중 운명의 5분에 관련된 조종사들의 경우 항공모함 격침이 전술적 목적이었으므로 당연히 해야 할 임무 달성 범위 안이였기 때문에 대단한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십자장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을 격추한 조종사들 역시 애초부터 야마모토를 잡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십자장에 그친 것이라 볼 수 있다.] 전투는 잘했지만 목표 달성을 실패했을 경우[* 장진호 전투의 올리버 스미스 소장 역시 대단히 훌륭히 전투를 치루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배였고, 장진호 전투만의 이유는 아니지만 이북에서 완전 철수라는 결과가 뒤따라왔으므로 명예 훈장을 못 받았다고 봐야 한다.], 전투 과정에서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안이 있을 경우[* 미드웨이 해전의 왈드론 소령의 경우 공격 이동 중 상관인 링 중령에게 대놓고 항명 및 하극상을 벌였고 이를 모든 부하들이 듣고 있었으므로 무공이 뛰어난 것만 반영하여 십자장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링 중령이 엄청난 관심간부였고 장성 빽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바람에 항공모함 전체에서 경원시되는 인물이었고, 그 '빽'이었던 미처 제독은 링을 보호하려고 '''보고서 조작을 시도'''하다가 스프루언스의 분노를 사서 '''짤렸다''', 미처 제독이 사람 보는 눈은 없었지만 능력은 있으니 복귀시키자고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니미츠 제독'''이 건의했음에도 스프루언스는 미처 제독을 계속 불신했고, 1년 넘게 한직을 전전하다가 니미츠가 '전임자인 파우널 제독을 동승시킬 것, 실망스러운 행동을 할 경우 변명 듣지 않고 즉각 지휘권 박탈 및 보직해임'이라는 초강경한 조건을 건 뒤에야 스프루언스의 동의를 얻어 다시 승함할 수 있었을 만큼 제대로 찍혔었다. 다행히 그 전투에서 전공을 올렸기에 망정이었지 안 그랬으면 괘씸죄로 다시는 지휘권을 받을 수도 없었을 지경. 결과적으로 링 중령의 관심간부짓에 항명 안 했으면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4척은 무사히 살아돌아갔을 거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미드웨이 해전의 승리를 불러온 항명'''이었다.]에는 무공만 기려서 대체로 십자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반대로 무공이 애초의 전술적 목표범위 안이지만 그 행위가 상징적이거나[* 대표적으로 진주만 기습 이후 일본 본토 공습을 가한 두리틀 중령의 경우, 단순히 보면 본래의 작전계획대로 본토를 공습 성공한 것으로만 볼 수 있지만, 이 공습 자체가 거의 자살특공에 가까운 임무였고, 결과적으로 미국을 결집시키고 희망을 주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는 데 커다란 상징적인 의의가 있으므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전투에 패배하였더라도 최소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거나 미군의 명예를 높인 경우[* 6.25 전쟁 당시 윌리엄 딘 소장의 경우 전투에 패배하고 포로로 잡히는 치욕까지 겪었지만, 후퇴를 최대한 하지 않고 사단장이 직접 진두지휘해서 전차를 격파하는 등 분전한 결과 적의 공세 지연이라는 전략적 목표 자체는 달성하였고, 그 결과 국군이 재정비하고 미군이 투입될 시간을 벌었던 데다가, 당시 사단장이 전사했다고 판단하여 추서 차원에서 명예 훈장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필리핀 전역의 조나단 웨인라이트 장군 역시 결과적으로는 패배하여 포로 생활까지 했지만, 맥아더 대신의 희생양으로서 끝까지 분전하여 일본군의 애초 작전계획을 최대한 지연시켰으며, 그 결과 미군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호주로의 공세를 단념시킨 데 공이 크므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라면 명예 훈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